본문 바로가기
마음의 시 Poem Life/좋은 시 모음

섬, 방문객, 정현종 시 모음

by 뿌리깊은나무N 2023. 2. 26.
반응형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정현종 '방문객' 시 중에서

 

오고 가는 인연들을 소중히 생각하게 만드는 '방문객' 이외 시 모음

 

그렇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기에 오늘 나에게 다가온 인연을 소중히 섬기는 것! 그것이 사람과의 인연을 쌓아가는 좋은 인생인 것이다.

 

 

감동적인 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 시 이미지 마음의 정원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비에 젖은 꽃 잎 이미지 마음의 정원

하늘을 깨물었더니

 

하늘을 깨물었더니 비가 내리더라
비를 깨물었더니 내가 젖더라

 

 

섬 이미지 마음의 정원

섬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봄 꽃 이미지 마음의 정원

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
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었습니다

 

좋은 풍경  

늦겨울 눈 오는 날

날은 푸근하고 눈은 부드러워

새살인 듯 덮인 숲 속으로

남녀 발자국 한 쌍이 올라가더니

골짜기에 온통 입김을 풀어놓으며

밤나무에 기대서 그 짓을 하는 바람에

예년보다 빨리 온 올봄 그 밤나무는

여러 날 피울 꽃을 얼떨결에

한나절에 다 피워놓고 서 있었습니다

 

강가의 노을이미지 마음의 정원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낮 술 이미지 마음의 정원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

 

낮술

하루여, 그대 시간의 작은 그릇이
아무리 일들로 가득 차 덜그덕거린다 해도
신성한 시간이여, 그대는 가혹하다
우리의 그대의 빈 그릇을
무엇이로든지 채워야 하느니,
우리가 죽음으로 그대를 배부르게 할 때까지
죽음이 혹은 그대를 더 배고프게 할 때까지
신성한 시간이여
간지럽고 육중한 그대의 손길.
나는 오늘 낮의 고비를 넘어가다가
낮술 마신 그 이쁜 녀석을 보았다
거울인 내 얼굴에 비친 그대 시간의 얼굴
시간이여,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그대,
낮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처럼
비로소 낮의 꼭대기에 올라가 붉고 뜨겁게
취해서 나부끼는 그대의 얼굴은
오오 내 가슴을 미어지게 했고
내 골수의 모든 마디들을 시큰하게 했다
낮술로 붉어진
아, 새로 칠한 뺑끼처럼 빛나는 얼굴,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

 

 

아침 풍경 이미지 pixabay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아침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있는 건 오로지

새날

풋기운!

 

운명은 혹시

저녁이나 밤에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올는지 모르겠으나

아침에는

운명 같은 건 없다 

 

 

강가 노을지는 풍경 이미지 마음의 정원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나무에 깃들여

 

나무들은
난 대로가 그냥 집 한 채
새들이나 벌레들만이 거기
깃들인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까맣게 모른다 자기들이 실은
얼마나 나무에 깃들여 사는지를!

 

 

바쁜 듯이

 

정말 바쁘지는 말고

바쁜 듯이

그것도 스스로에게만

바쁜 듯이

 

한가한 시간이 드디어

노다지가 될 때까지 느긋하게

느긋하게 바쁜 듯이

안 부 

도토리나무에서 도토리가

툭 떨어져 굴러간다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도토리나무 안부가 궁금해서

 

 

pixabay

 

슬픔 옆에는 느낌표 하나 울려 놓고
기쁨 옆에는 느낌표 하나 웃겨 놓고

 

느낌표

나무 옆에다 느낌표 하나 심어 놓고
꽃 옆에다 느낌표 하나 피워 놓고
새소리 갈피에 느낌표 하나 구르게 하고
여자 옆에 느낌표 하나 벗겨 놓고

슬픔 옆에는 느낌표 하나 울려 놓고
기쁨 옆에는 느낌표 하나 웃겨 놓고
나는 거꾸로 된 느낌표 꼴로
휘적휘적 또 걸어가야지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어떤 적막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고

쓸쓸함은 가이없이 퍼져나간다

그 공기 속에 나도 즉시

적막으로 일가一家를 이룬다

그걸 만든 손과 더불어

 

 

나는 슬픔이에요

문을 열고 나가자
복도 저쪽 어두운 구석에서
지키고 있었다는 듯이 시간이
귀신과도 같이 시간이
검은 바람결로 움직이며 말한다
'나는 슬픔이에요'

오가는 발소리들
무슨 웅얼거림들
그 시간에 물들어
비치고 되비치며 움직이느니

우리는 때때로
제 목소리를 낮추어야 하리
조용해야 하리

 

정현종 시인은 물화된 사회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인간의 영혼과 그 외로움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시로 이름이 나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짧은 시 ‘섬’도 그 작품이다.

인생에서 성패는 사람과 관계에 달려있고, 그 능력이 8할 이상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다. 대인관계는 만남에 대한 태도와 인식이 그 핵심이리라.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 만나는 것을 기꺼워한다면 대인관계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게 귀찮고 즐겁지 않다면 자연히 삶이 위축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방문객’은 어떠한 만남일지라도 진실하게 성심성의를 다해 환대해야 한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한 사람 일생이 오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 둘레의 사람들, 수없이 다녀갔을 방문객들, 쌓인 명함 주인들, 페이스 북의 많은 ‘페친’들까지 나는 그들 삶을 얼마나 이해하고 보듬어왔을까. 인연의 소중함은 말할 나위 없으며, 사람과 만남과 헤어짐은 생을 재설계해야 할 만큼 힘든 일이다.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이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는 사람이며,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다”라고 톨스토이가 말했듯이 많이 늦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인연의 빛에 우리들 상처를 함께 내다 말려야 하리라. 

- 권순진

 

정현종 시인 프로필

 

정현종 시인은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3살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까지 경기도 화전에서 유소년 기를 보냈는데, 이때의 자연과의 친숙함이 그의 시의 모태를 이룬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신태양사·동서춘추·서울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재직하였다. 그 후 1974년 마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가했으며, 돌아와서는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를 역임했다.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한 그는 지금까지 쉼 없는 창작열과 자신의 시 세계를 갱신하는 열정으로 살아 있는 언어,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열어 보여왔다. 

첫 시집 『사물의 꿈』을 출간한 이래 『나는 별아저씨』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한 꽃송이』 『세상의 나무들』 『갈증이며 샘물인』 『견딜 수 없네』 『광휘의 속삭임』 등의 시집과, 『고통의 축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이슬』 등의 시선집을 펴냈다. 또한 시론과 산문을 모은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숨과 꿈』 『생명의 황홀』 등을 출간했으며, 다수의 해외 문학 작품집을 번역했다. 

 

그리고 2015년 4월, 등단 50주년을 맞은 시인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인 『그림자에 불타다』와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를 상자 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 부문), 파블로 네루다 메달 등을 수상했다.

"정현종"의 책들

 

어디선가 눈물은 발원하여 / 정현종 지음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정현종 지음
두터운 삶을 향하여 / 정현종 지음
그림자에 불타다 / 정현종 지음
견딜 수 없네 / 정현종 지음
광휘의 속삭임 / 정현종 지음
정현종 시전집 / 정현종 지음
정현종 시전집 2 / 정현종 지음
정현종 시전집 1 / 정현종 지음
갈증이며 샘물인 / 정현종 지음
이슬 / 정현종 지음
세상의 나무들 / 정현종 지음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지음
한 꽃송이 / 정현종 지음
숨과 꿈 / 정현종 지음
나는 별아저씨 / 정현종 지음

 

자료인용: 문학과 지성사

 

마음의 정원에서 만나는 정현종 시인의 좋은 시 모음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