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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 Poem Life/사랑 & 행복

미라보 다리에서 만난 좋은 외국 시(기욤 아폴리네르)

by 뿌리깊은나무N 2022.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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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Le Pont Mirabeau)
- 기욤 아폴리네르 Guillaume Apollinaire)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

계절이 오고가듯 사랑도 오고 간다. 오가는 계절속에 좋은 시 한편과 함께.. 길에서 길을 묻다

아폴리네르의 좋은 시 미라보 다리, 이미지 / 길에서 길을 묻다(그린비스토리)


미라보 다리( Le Pont Mirabeau)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문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지친 듯 흘러가는
영원의 물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이곳에 머문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고
희망은 이토록 강렬한지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문다

미라보 다리 - 위키백과 (미라보 다리는 1895년~1897년에 지어진 다리로서 1975년 프랑스의 역사적인 기념물로서 지정되기도 하였다.)


미라보 다리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이는 바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 시인이자, 미술 비평가이기도 했던 그는 당대 여러 예술가들과의 교류로, 특히 피카소와의 우정으로 유명하며, 그의 시집 '알코올'에 수록된 '미라보 다리'는 연인이었던 프랑스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이별 후에 남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아폴리네르는 프랑스 국적이 아닌,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른 채 폴란드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파리에서 긴 시간을 무국적 신분으로 체류했다. 그는 36세가 돼서야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입은 머리 부상을 치료하던 중 스페인 독감에 걸려 서른여덟 해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아폴리네르가 미라보 다리를 걷다가 그의 옛 연인 마리 로랑생(1883~1956) 과의 사랑을 회상하며 썼다는 이 시는 초현실주의 시인이었던 그의 대표작이다.

미라보 다리에서 영원한 사랑을 속삭였던 아폴리네르의 사랑 이야기는 영원히 흐르는 강물처럼 지속되지 못하고 세월 속에 영원히 강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프랑스 시인 아폴리네르는 그녀와 이별 후 미라보 다리에서 세느 강을 바라보며 강물처럼 흘러가버린 그들의 진실했던 사랑을 아쉬워하며 애틋한 연민의 마음을 '미라보 다리'라는 시로 표현했다.

기욤 아폴리네르, 외국 시인

'미라보 다리'는 프랑스 현대시의 거장 아폴리네르(1880~1918)의 대표적 작품인 좋은 시!

시인은 가난한 방랑자였다. 은행의 하급직원, 출판사 보조원, 자유기고가 등으로 일하며 20세부터 25세까지 네덜란드, 독일(라인 강변) 등지를 떠돌았다. 그런 보헤미안 기질이 어떤 이론이나 유파(流派)에 귀속되지 않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독특한 시를 썼다. 그러다 피카소, 마티스 같은 입체주의 미술에 영향받아 시에 입체파 미술을 결부시키려 했고 이후에는 초현실주의 유파로 빠져들었다. ‘초현실주의(surrealisme)’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이가 아폴리네르다.

마리 로랑생

아폴리네르는 파블로 피카소 등과 어울리면서 아방가르드운동에 참여하다가 1907년 피카소의 소개로 세 살 밑의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났다.

비와 그리움 좋은 시와 함께하는 사랑과 이별이 담긴 미라보 다리의 좋은 외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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