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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노벨문학상 후보 고은 시인 성추행 몰락, 최영미 폭로내용

by 뿌리깊은나무N 2018.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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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57세), 고은 시인(86세)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촉발된 미투운동은 연일 터지는 폭로에 의해 세상이 온통 지뢰밭 인듯 유명 연예인에서 부터 문학계, 음악계, 종교계로 일파만파 들불처럼 번져 나가고 있다. 


고은, 이윤택, 조민기, 오달수, 류복성, 남궁연 등,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성추행 폭로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가해자들은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또 다른 성추행 가해자들은 처음엔 강력하게 부인을 하다가 추가로 터져 나오는 폭로에 뒤늦은 사과를 해서 많은 이들로 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미투운동으로 인해 폭로와 사과가 이어지고 있지만, 정작 문학계의 원로 고은 시인은 아무런 사과도 없이 오로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 필자는 고은 성추행 사건을 재 조명해 보았다. 


고은 시인은 지난 2013년 수원시가 마련해준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에 주거 및 창작공간 '문화향수의 집'에 거주해왔지만, '거주지를 다른 장소로  이주하겠다' 거나 '현재 모든 직책을 내려 놓겠다' 는 입장 이외엔 고은 시인은 직접적인 사과와 반성도 없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며 피해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고 한 언론에서 변호사가 지적을 하였다.


이러한 논락속에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고은 시인의 전시 공간인 서울도서관 ‘만인의 방’이 결국 철거된다고 한다. 지난 28일 서울도서관에 따르면 최근 성추행 논란과 관련된 만인의 방을 철거하기로 했다고 언론에 밝혔다. 




최영미 시인 문학계 성추행 폭로 출처-JTBC



최영미 시인은 '문단 술자리에서 저에게 성추행 행동을 한 사람은 한 두 명이 아니었다'며 “독신의 젊은 여성 타깃 이었다. 이어 그는 '여성 피해자들이 아주 많고 특히 독신의 젊은 여성들이 타겟이며, 가해자 들에게 잘못 보이면 그 여성 문인은 상을 탈 때 후보에 오르지도 못한다' 고 전했다.

최영미 시인의 행추행 폭로글을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놓은 것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가 큰 힘이 되었다고 본다. 서지현 검사 폭로 이후, 시 '괴물'이 화제가 되었고 기사화됐다. 최영미 시인은 이러한 이슈 속에서 '문단 내 성폭력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가 겪은 슬픔과 좌절을 젊은 여성 문인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며 방송에 나왔다'고 JTBC 뉴스룸 인터뷰에서 밝혔다.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실린 '괴물'이라는 시 '괴물'에서 '고은 시인'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으나, 'En'이라는 이름, '노벨상' 언급 등을 통해 고은 성추행을 추측할 수 있는 근거의 여지를 남겼다.


고은 시인은 2012 한국 노벨문학상 후보에 지명되었지만 결과는 고은 시인이 아닌, 중국 소설가 모옌에게 영예가 돌아갔다는 소식에 문학계에와 팬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만약 그때 고은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지금의 고은 성추행 사건이 어쩌면 국제적으로 큰 망신거리가 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해본다.




황해문화에 실란 시 ‘괴물’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문을 폭로했던 최영미 시인이 모 언론사를 통해 추가 고발문을 통해 고은 시인의 추태를 낱낱이 폭로했다. 최영미 시인은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 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면서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며 2차 폭로를 했다.


아래 글은 최영미 성추행 모 언론사에 밝힌 원로시인 고은 성추행 내용이다. 


<최영미 시인의 고발문 전문>


내 입이 더러워질까봐 내가 목격한 괴물선생의 최악의 추태는 널리 공개하지 않으려 했는데, 반성은커녕 여전히 괴물을 비호하는 문학인들을 보고 이 글을 쓴다. 


내가 앞으로 서술할 사건이 일어난 때는 내가 등단한 뒤,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의 어느날 저녁이었다. 장소는 당시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종로 탑골공원 근처의 술집이었다. 홀의 테이블에 선후배 문인들과 어울려 앉아 술과 안주를 먹고 있는데 원로시인 En이 술집에 들어왔다. 


주위를 휙 둘러보더니 그는 의자들이 서너개 이어진 위에 등을 대고 누웠다. 천정을 보고 누운 그는 바지의 지퍼를 열고 자신의 손으로 아랫도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보는 놀라운 광경에 충격을 받은 나는 시선을 돌려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홀에 찬 그의 주름진 얼굴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 ” 흥분한 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한참 자위를 즐기던 그는 우리들을 향해 명령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야 니들이 여기 좀 만져줘.” 


‘니들’ 중에는 나와 또 다른 젊은 여성시인 한명도 있었다. 주위의 문인 중 아무도 괴물 선생의 일탈행동을 제어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재미난 광경을 보듯 히죽 웃고….술꾼들이 몰려드는 깊은 밤이 아니었기에 빈자리가 보였으나, 그래도 우리 일행 외에 예닐곱 명은 더 있었다. 누워서 황홀경에 빠진 괴물을 위에서 내려다보더니 술집마담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아유 선생님두-”


이십 년도 더 된 옛날 일이지만, 그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처치하기 곤란한 민망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나도 한때 꿈 많은 문학소녀였는데, 내게 문단과 문학인에 대한 불신과 배반감을 심어준 원로시인은 그 뒤 승승장구 온갖 권력과 명예를 누리고 있다. 


공개된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물건’을 주무르는 게 그의 예술혼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묻고 싶다. “돌출적 존재”인 그 뛰어난(?) 시인을 위해, 그보다 덜 뛰어난 여성들의 인격과 존엄이 무시되어도 좋은지. 


-시인 최영미


지난 연일 터지는 고은 시인 성추행 의혹 폭로에 따른 네티즌의 반응은 고은 '노벨문학상 대신 노출상 받아야 할 판' 이라는 댓글들이 쏟아졌다.


고은 시인이 최영미 성추행 폭로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사이 최영미 시인의 '미투' 폭로 글에 한 모씨가 지난달 28일 SNS를 통해 고은 성추행에 대한 반박글을 올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 모씨의 최영미 시인 반박 글 전문>


성추문 으로 사회가 요동을 친다. 썩거나 앓던 이는 언젠가는 뽑게 되어있다. 힘의 논리로는 강자가 약자를 추행하면 힘없이 당한자는 일생을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로 인하여 멍에로 끓려 다닌다.   


성추행 폭로 고발자의 용기에 위로와 격려를 보내고 싶다 화이팅!~ 하라고, 

  

최영미 시인이 언급했던것 처럼 문단에도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 만연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최시인이 언급한 고은시인은 그런부류가 아닌것으로 기억한다. 


그분은 승려출신이라는 자긍심이 항상 있었고 입으로는 수없이 기행적인 행동과 성희롱 발언을 언급 했을지언정 의자 위에 등을 대고 누워 바지 지퍼를 내리고 자신의 아랫도리에 손을 넣고 만지고 그런 추태적 성추행 기행을 했던 기억은 아닌것 으로 안다.  

  

고은 시인은 시인이며 입답꾼 재담가다. 30년전 그시절 문화는 섹시하다. 입술이 매력적이다. 맛있게생겼다. 그런 농을 침을 흘려가면서 위안 삼아 많이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정이있던 밤문화 시절이 있었다. 


최루탄 가루에 콧물 눈물 흘리고, 암울했던 6월 항쟁과 민주화 투쟁의 연장선에서 시대의 아픔과 새희망을 노래하며 뜻을 함께 하는 문인들이 모여 그시대 그시절에는 성희롱이란 개념없이 노상방뇨도 하고 행단보도 옆에 두고 차도로 뛰어다니고 질서와 상관없이 쾌쾌한 담배연기 속에서 질퍽한 밤문화를 보내기도 했던 미성숙했던 문화적 흐름을 지금의 잣대로 체벌을 하는건 심한것 같다. 

   

8살만 되어도 아이 손에는 핸드폰을 들려주고 각가정에는 승용차 성인1대씩 소유하고 전국 팔도를 자유자재로 유람하고 세계여행을 내땅 밟듯이 자유로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최첨단 문화왕국에서 금연지역 시각으로 희뿌연 30여년전 벌어졌던 성희롱 발언들을 어떻게 부풀려도 너무 부풀려 마녀사냥 하듯 죽일 죄인을 만드는것 해도 해도 너무 한것 같다.   

  

최영미 시인 그대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질문하고 싶다. 탑골 공원 주변 정확한 장소명과 그자리에 함께 동행한 인물명 그리고 고은시인의 추태 목격자 문인거명요함. 문단에 물과기름 처럼 겉도는 최영미 시인 평소 욕심이 남다르다는건 알지만 문단의 거목을 낭설만 가지고 진흙탕으로 끌어들여 매장시키려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그래야만이 자신이 주목받기 때문인지? 아니면 성희롱 내지 성추행 또는 성폭행을 직접적 으로 당한적은 있는지?   

  

펙트로근거를 올렸으면 한다. 여론에 휘말려 매장 당하게 하지 말고 정획한 펙트가 아니면 소설 그만 쓰고 반성할게 있으면 지금이라도 반성하고 사죄하길 바란다. 그렇게 소설 쓰면서까지 자신을 홍보하고 싶나? 문인이면 문인답게 좋은글로 독자들에게 평가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설설설 갖으고 진실인 처럼 모든이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지 말기를 ...  

  

그렇다하여 문단에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건 아니다. 알맹이들은 빼고 껍데기를 논하면서 실체없이 허무하다. 그시절은 남자 문인들보다 젊은 20~30십대 여성들이 문단에 등단 하고 싶어서 어떻게들 했는지 묻고싶다.?


명망 높은 출판사에 시집 출간내고싶어 어떻게들 했는지? 그러고서들 시대가 바뀌니 모든 책임들을 강자 약자로 분류를 한다면 그건 아닌것 같다. 거두절미 하고 소설은 그만 쓰고 고은시인이 사회에서 지탄 받을 만큼 근거있는 기행 펙트로 밝혀 주기를...  다시 말하지만 이번 일간지에 1000자 분량 올린글은 최영미 소설 이였다가 펙트다. 

  

ㅡ참고로 나는 최영미 시인이 동아일보에 쓴 고발장에서 언급한 <1992년 겨울에서1994년 봄 사이 탑골공원 인근의 한 술집> 인 <탑골>을 운영 했던 주인 으로서 ( 최영미 표현에 따르면 “ 술집마담 ” ) 최영미가 고발장에서 언급한 고은 시인의 그러한 자위행위 장면은 전혀 목격한 적이 없으며 10년을 넘게 그분을 지켜 보았어도 그런적은 없었다. 


그리고 여기자들과 인터뷰하실때도 농담을 흘리기는 했을지언정 잡스럽거나 추행은 일절없이 목소리를 깔고 젊잖으셨다. 

  

도저히 이해가 안간다. 그러기에  최시인이 고발장에서 마치 내 말인 것 처럼 인용한 글   ㅡ“ 아유 선생님두”  라는 말은 한적도 없다는 것을 밝힌다. 소름끼친다. 나의 성격이 곰살부리는 여우도 아니고 거친 야생마 기질이 강한 내가 섹기 부리듯 ... 헐 

  

ㅡ참고로 나는 중앙일보 <남기고 싶은이야기들>에서 [풍류탑골] 2000년4월부터 50회가량 민족문학인들의 뒤이야기를 연재 하기도했다. 고은시인이 만약 그러한 기행을 했다면 그 재미난걸 왜 내가 연재할 당시 추가시키지 않았겠는가.   

  

최영미가 언급한 1992년겨울~1994년 봄 최시인이 문단에도 등단하기 전에 잘나가는 명망 높은 출판사 사람들 틈에 끼여서 왔던 기억도 생생하고 그는 고은 선생님과 함께 동석한 적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시절만 하여도 탑골은 가난한 문인들이 낭만을 노래하고 배고프고 술고픈 문인들이 가난하지만 인정이 넘치고 눈물이 넘치던 순정이 어우러지는 문화적 공간이였지 있을수 없는 가공의 소설은 삭제하기 바란다. 


진실은 오로지 가해자와 피해자만 알고 있을 뿐이다. 성추행 가해자는 굳게 입을 다문채 말이 없고, 무성한 이야기들로 세상은 무척이나 시끄럽다.  고은 86세의 나이에 더구나 문학계의 원로시인 이라면 침묵으로 일관 할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밝히고 잘못된 것은 사과해서 지금의 혼란을 수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우리나라 문학계의 거장 이라면 이에 걸맞는 행동과 책임이 뒤 따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길이 없다.


더구나 필자(그린비스토리)는 시를 유년시절부터 무척이나 좋아했고, 지금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필자가 소셜류 보다 시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짧은 문장속에 녹아든 큰 뜻이 한권의 책을 읽은 느낌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시를 좋아한다.


고은 시인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서, 시인의 생가 터에는 시인의 행적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시 한 편과 문패가 걸려있다고 한다. 또한공원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지명된 것을 기념해 시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유명 문학인의 성추해 파문으로 인해 시인의 공적을 기리는 시단위 사업이 모두 보류되었고, 설치된 기념물을 철거하라는 민원도 잇따르는 등 지역의 자랑과 자부심 이었던 인물의 몰락으로 전북 군산은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기적처럼 시작된 '미투운동'이 권력자들의 갑질에서 벗어나서 서로가 평등한 관계속에서 더 좋은 사회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필자는 기대하며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


포스팅을 이렇게 오랜시간 길게 올리기는 난생 처음이다. 좋은 세상을 꿈구다 2018.03.03 그린비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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