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관한 시 도종환, 정호승, 나태주 가을 시 모음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
정호승 '너에게' 중에서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
나태주 '멀리서빈다' 중에서
사랑하기 좋은 계절 가을에 관한 시모음과 함께 가을 속으로..
좋은 가을 시 모음으로 가을날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는 언제나 좋은날 가득하길..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에게
- 정호승
가을비 오는 날
나는 너의 우산이 되고 싶었다
너의 빈 손을 잡고
가을비 내리는 들길을 걸으며
나는 한 송이
너의 들국화를 피우고 싶었다
오직 살아야 한다고
바람 부는 곳으로 쓰러져야
쓰러지지 않는다고
차가운 담벼락에 기대 서서
홀로 울던 너의 흰 그림자
낙엽은 썩어서 너에게로 가고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하다는데
너는 지금 어느 곳
어느 사막 위를 걷고 있는가
나는 오늘도
바람 부는 들녘에 서서
사라지지 않는
너의 수평선이 되고 싶었다
사막 위에 피어난 들꽃이 되어
나는 너의 천국이 되고 싶었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가을비
- 도종환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가을 편지
-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 한 말 못다 한 노래
까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좋이 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 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이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 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가을은 짧아서
- 박노해
가을은 짧아서
할 일이 많아서
해는 줄어들고
별은 길어져서
인생의 가을은
시간이 귀해서
아 내게 시간이 더 있다면
너에게 더 짧은 편지를 썼을 텐데
더 적게 말하고
더 깊이 만날 수 있을 텐데
더 적게 가지고
더 많이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가을은 짧아서
인생은 짧아서
귀한 건 시간이어서
짧은 가을 생을 길게 살기로 해서
물들어 가는
가을 나무들처럼
더 많이 비워내고
더 깊이 성숙하고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가을 엽서
- 안도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낮은 곳으로
자꾸 내려앉습니다
세상에 나누어줄 것이 많다는 듯이
나도 그대에게 무엇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게 너무 없다 할지라도
그대여
가을 저녁 한때
낙엽이 지거든 물어보십시오
사랑은 왜 낮은 곳에 있는지를
당신은 늘
내게
행복을 안겨주니까요
가을 하늘
- 오보영
가슴엔
가득
당신을 품어 안고
두 눈은
항상
당신을 향해 봅니다
당신은
언제나
나를 채워주니까요
당신은 늘
내게
행복을 안겨주니까요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가을사랑
-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나태주의 가을에 관한 시 가을 여행, 먼 길 외롭게 혼자 찾아 간 것도 이 가을엔 그리 나쁘지 않으리..
가을 여행
- 나태주
멀리멀리 갔지 뭐냐
그곳에서 꽃을
여러 송이나 만났지 뭐냐
맑은 샘물도 보았지 뭐냐
그렇다면 말이다
혼자서 먼 길 외롭게
힘들게 찾아간 것도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지 않으냐
가을 사랑 시 윤보영의 '귀뚜라미' 그대 생각은 보고싶다고 가을 하늘에 울려 퍼진다.
귀뚜라미
- 윤보영
늦은 밤
가을이 데려온
귀뚜라미 소리가
그대 생각을 불러왔습니다
귀뚜라미는
가을이다
가을이다
귀를 울리고
그대 생각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그리움을 울리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 정호승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떨어질 때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낙엽이 왜 낮은 데로 떨어지는지를
아는 사람을 사랑하라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시월의 붉은 달이 지고
창밖에 따스한 불빛이 그리운 날
이제는 누구를 사랑하더라도
한 잎 낙엽으로
떨어져 썩을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한 잎 낙엽으로 썩어
다시 봄을 기다리는
사람을 사랑하라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
- 정유찬
가을엔
너른 들판을 가로 질러
노을 지는 곳으로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 보리라
아무도 오지 않는
그늘진 구석 벤치에
어둠이 오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리움과 서러움이
노랗게 밀려오기도 하고
단풍이
산기슭을 물들이면
붉어진 가슴은
쿵쿵 소리를 내며
고독 같은 설렘이 번지겠지
아, 가을이여!
낙엽이 쏟아지고 철새가 떠나며
슬픈 허전함이 가득한 계절일지라도
네게서 묻어오는 느낌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뿐이네.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을
- 김용택
가을입니다.
해 질 녘 먼 들 어스름이
내 눈 안에 들어섰습니다.
윗녘 아랫녘 온 들녘이
모두 샛노랗게 눈물겹습니다.
말로 글로 다할 수 없는
내 가슴속의 눈물겨운 인정과
사랑의 정감들을 당신은 아시는지요.
해 지는 풀 섶에서 우는
풀벌레들 울음소리 따라
길이 살아나고
먼 들 끝에서 살아나는
불빛을 찾았습니다.
내가 가고 해가 가고 꽃이 피는
작은 흙길에서
저녁 이슬들이 내 발등을 적시는
이 아름다운 가을 서정을
당신께 드립니다.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사랑한다 말 못 하고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 나태주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
꽃이 예쁘다느니 하늘이 파랗다느니
그리고 오늘은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
이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역에 나가 기차라도 타야 할까 보다고 말을 했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 두고서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나온 길
작은 간이역에 내려 강을 찾았다고
그렇게 짧은 안부를 보내주었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둔 채로 그렇게 떠나온
도시에서 이 강물이 그렇게나 그립더니만
가을이라 쓸쓸한 노을빛 강가에 서고 보니
그리운 것은 다른 어느 것이 아닌 사람이더라고
그렇게 당신의 그리움을 전해왔습니다
끝내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
그 강가 갈대숲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았노라고 말을 했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내색도 없이 접어두고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주문처럼 외웠다 했습니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간다지
저 강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간다지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더라고
나도 흐르고 너도 흐르고
우리 모두 어디론가 흘러가더라고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 둔 채로
그렇게 흐르는 것은 인생이더라
사랑한다는 말은 끝끝내 접어두고서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 편지
- 고은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너의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사랑으로 머물고 싶은
가을 아침
가을 연서
- 윤보영
꽃으로
구름으로
가끔은 향기로
네가 행복할 수 있다면
너의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사랑으로 머물고 싶은
가을 아침
만추
- 나태주
돌아보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사랑했던 날들
좋아했던 날들
웃으며 좋은 말 나누었던 날들만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
등 뒤에서 펄럭!
또 하나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었다.
가을바람
-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는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그 간절함의 빛깔로
눈 감아도 선연히 되살아 오는 얼굴들
가을 비망록
- 김인육
최후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이다
서늘한 눈매로 서 있는 가을 나무는
지는 해 저녁놀 곱게 물들이듯
떠나는 모습이 아름답고 싶은 것이다
한때 뜨겁게 사랑하지 않은 자
어디 있겠고
마침내 결별이 아프지 않은 자
어디 있겠는가
가을은
노랗게 혹은 빨갛게 울음의 색깔을 고르며
불꽃처럼 마지막을 타오르고 있다
빛나는 한때를 간직한 가을 나무는
알고 있다
하나 둘 떨구는 이파리마다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며
막막한 절말을 지워 가는 법을
그 간절함의 빛깔로
눈 감아도 선연히 되살아 오는 얼굴들
가슴 깊숙이 나이테로 새겨 두는 법을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가을 편지 1
- 이해인
하늘 향한 그리움에
눈이 맑아지고
사람 향한 그리움에
마음이 깊어지는 계절
순하고도 단호한
바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용서하며
산길을 걷다 보면
툭, 하고 떨어지는
조그만 도토리 하나
내 안에 조심스레 익어가는
참회의 기도를 닮았네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가을
- 정호승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깊은 가을
- 도종환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멈추어 있는
가을을 한 잎 두 잎 뽑아내며
저도 고요히 떨고 있는
바람의 손길을 보았어요
생명이 있는 것들은 꼭 한 번 이렇게
아름답게 불타는 날이 있다는 걸 알려 주며
천천히 고로쇠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만추의 불꽃을 보았어요
억새의 머릿결에 볼을 비비다
강물로 내려와 몸을 담그고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댈 때마다
튀어 오르는 햇살의 비늘을 만져 보았어요
알곡을 다 내주고 편안히 서로 몸을 베고 누운
볏짚과 그루터기가 두런두런 이야시를
나누는 향기로운 목소리를 들었어요
가장 많은 것들과 헤어지면서
헤어질 때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살며시 돌아눕는
산의 쿨럭이는 구릿빛 등을 보았어요
어쩌면 이런 가을날
다시 오지 않으리란 예감에
까치발을 띠며 종종 대는 저녁노을의
복숭아빛 볼을 보았어요
깊은 가을 마애불의 흔적을 좇아 휘어져 내려간다
바위 속으로 스미는 가을 햇살을 따라가며
그대는 어느 산기슭 오는 벼랑에서
또 혼자 깊어가고 있는지요
당신의 오늘은
저의 반가운
첫 손님이시군요.
가을비에게
- 이해인
여름을 다 보내고
차갑게
천천히
오시는군요
사람과 삶에 대해
대책 없이 뜨거운 마음
조금씩 식히라고 하셨지요?
이제는
눈을 맑게 뜨고
서늘해질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시는군요
당신의 오늘은
저의 반가운
첫 손님이시군요.
추억으로 오는 가을
- 이채
가로수 길 위로 뒹구는 낙엽이
긴 머리카락 사이로 불어오면
안개처럼 흐림 추억이 가을로 스치네
아득한 기억 속에서도
아름답고 소중했던
삶의 뒤안길에 새겨진 발자국 위로
나는 지금 가을을 걷고 있네
낙엽 한 장 주워 물끄러미 바라보면
가는 잎새를 줄기에 새겨진
풀잎 같은 사랑과
얇은 이파리 부스러질 듯
내 작은 이별도 서려있네
그리움과 아쉬움이
낙엽의 앞뒤로 새겨져
흩어졌다 저 멀리
무리 지어 나는 새처럼
남겨진 것들은 지워지지 않고
잊힌 것들은 다시 떠오르는
이 거리 낙엽이 추억으로 흩날리네
먼 훗날 간직하기 좋을
갈잎 하나 챡 갈피에 끼우며
나는 지금 추억으로 오는 가을을 걷고 있네
비에 젖고 사랑에 젖는 가을 시 모음으로 가을 사랑을 전합니다.
도종환 가을의 시와 나태주 가을 사랑 시, 정호승 시인의 가을
에 관한 시모음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